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아까워서'라는 이유로 더 큰 손해를 자초하곤 합니다. 대표적인 동네 영화관에서의 경험이 있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예매한 영화인데, 상영 시작 후 30분이 지나도록 지루하고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상영관을 나와 책을 읽거나 카페에 가는 것이 남은 주말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영화비 15,000원이 아까워서" 끝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결국 15,000원이라는 돈뿐만 아니라, 내 소중한 주말 시간 2시간까지 통째로 낭비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미 지불해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행동경제학에서는 '매몰 비용(Sunk Cost)'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매몰 비용에 미련을 두느라 앞으로 마주할 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현상을 '매몰 비용의 오류'라고 합니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이미 투입한 돈이나 시간,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만 더 버티면 본전은 찾겠지", "이만큼 해둔 게 있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면 너무 손해야"라는 논리로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계산해 보면, 과거에 들어간 돈은 이미 사라진 숫자일 뿐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앞으로 나갈 돈과 시간'뿐입니다.
재테크를 하면서 제가 가장 처절하게 매몰 비용의 늪을 경험했던 것은 한 유료 멤버십 교육 프로그램을 결제했을 때였습니다. 연간 가입비로 수십만 원을 선결제했는데, 막상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니 제대로 강의를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매달 고정적으로 유지 비용이 나가거나 시간을 쪼개야 하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해지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처음 낸 가입비가 얼만데, 몇 개라도 더 들어야 본전을 뽑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억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집중도 안 되는 강의를 켜놓으며 몇 달을 보냈고, 돈은 돈대로 날리고 스트레스만 극심하게 받았습니다.
이러한 오류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관리 영역에서 훨씬 더 위험하게 작용합니다. 어떤 종목을 매수했는데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되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사라졌다면, 지금이라도 매도하여 남은 현금을 더 유망한 자산으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가 "내가 산 가격이 얼마인데 지금 파냐"며 본전 생각에 사로잡혀 매도를 거부합니다. 심지어 평가 손실을 가리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어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미 잃은 돈(매몰 비용)에 집착하다가 미래의 자산까지 한꺼번에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셈입니다.
우리가 일상과 자산 관리에서 이 매몰 비용의 늪을 탈출하려면 의식적인 프레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과거의 타임라인'을 완전히 단절시키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얼마를 썼는가"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앞으로 나에게 이득인가, 손해인가"만 따져보는 것입니다. 영화관 예시로 돌아가면, 이미 낸 15,000원은 내가 영화를 보든 안 보든 사라진 돈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지루한 영화를 보며 2시간을 더 날리기'와 '밖으로 나가 즐거운 2시간 보내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답은 명확해집니다.
둘째로, 자산 관리에서는 매수 가격을 지우고 '현재의 가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계좌에 찍힌 마이너스 수익률의 원금을 보지 말고, "오늘 내가 이 금액의 현금을 처음 쥐었다면, 과연 이 종목을 새로 살 것인가?"를 질문해 보세요. 만약 새로 사지 않을 종목이라면, 단지 본전이 아깝다는 이유로 쥐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과거의 선택은 바꿀 수 없지만, 미래의 선택은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 현명한 자산가는 이미 지나간 버스에 미련을 두지 않고, 다음에 올 버스의 노선을 바르게 읽는 사람입니다. 내가 지금 포기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그것이 혹시 '아까움'이라는 감정 체증 때문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핵심 요약]
매몰 비용은 이미 지출되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뜻하며, 이에 집착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매몰 비용의 오류라고 합니다.
자신의 실패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심리 때문에, 물건이나 자산의 미래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전 생각에 계속해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시 과거의 지출 액수를 계산에서 완전히 제외하고, 오직 현재 시점부터 미래에 발생할 편익과 비용만 비교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똑같은 10만 원인데 왜 월급으로 받은 돈은 벌벌 떨면서 쓰고, 보너스나 이벤트로 당첨된 꽁돈은 쉽게 써버리는지, 돈에 가짜 이름표를 붙이는 '심리적 회계'의 함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낸 돈이 아까워서"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끝까지 먹었거나, 재미없는 공연을 끝까지 버티며 보았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뼈아픈(?) 매몰 비용 경험담을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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